Microcosm comprehended by Universal Laws


Lee, Ju-Hwa


Someone insists that fractal is found In Jackson Pollock's paintings. It is uncertain if it was Pollock's intention but nature is represented in the outcome of his strongly coincidental technique. Oh Soonmi's works at her exhibition Cosmos Fractal, in comparison with his paintings on which a fractal is observed, allow viewers experience another fractal by becoming a part of it. While fractal is a law appearing in nature, it seems that a natural thing and the human being as a chunk of volition are in conflict. In Oh's Cosmos Fractal, I observed how the human is embraced in the cosmos, which component the being is, and how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an individual and fractal is found.



There is a congregation of frames of footprints in one side of the exhibition site. The printed feet are of the people who have kept connections with the artist. A probable one of them is engraved in enlarged mirror works with the same title, Traces, on which the names of the people are inscribed along with the lines of the feet's sole. It seems to me that the footprints symbolize the vestiges of movements and the traces of the people. Footprint itself is an example of fractal which appears on the exterior part of the human body. Besides the depth or the repetition of the objects seen from the chain of countless reflections inside the works, the engraved names alongside the lines of their feet's sole as an instance of fractal might be an implication of a possibility that the relationships among the people are repeating and rotating. Viewers can pass through the space between the two sides of the mirrors installed in the exhibition hall. This space, or a crack, seems to take a role of a passage or a possibility which allows interchanges and circulations among the reflected objects on the mirrors and accepts exterior ones. Unlike Chaos Fractal, it seems to contain a property of communication with the external part in terms that it does not conduct direct illumination but the rest of the lights become a source of reflecting images on the mirrors.



This work can be seen as a temporary space which is changeable, and allows viewers infinite repetition of the space by mirrors facing each other. Two geometrical patterns in each part of the work are shaped in rectangular and curved lines which symbolize fractal, as if it were ritual patterns, which do not compete superiority but coexist by intersecting and overlapping on each other. Each space of the frontal, the rear, the upper, and the lower, expands permanently, but it is just for a moment that viewers are reflected when they enter the work, and the images are merely instant. It resembles a circulation of what composes the universe by the coming and going of the people who encounter the work, as if an individual's life is transient like dusts in the eternal great universe. The illuminations lighting on the works, however, recognize the sound made by the viewers and vary the degrees of their waves to clearly reflect the instant vestiges of them. Therefore, I first believed that this work had been the source of the term 'cosmos' in the exhibition title when I encountered it. The fantastic conduct of the works with the contemplations on the symbolism pictured on the lighting and the works with fractal's property was in contact with the conceptual universe I thought. The infinite space contained in the works illuminate the actual space where I belong as well as the virtual space unreachable beyond that real space. Nevertheless, there happens no gap between the boundaries of the real and the virtual since I am included in the space and can see with my own eyes.

Keeping functions of a door, the Cosmos Fractal has a room-like figure. Moreover, the inside mirrors reversely show only the back sheet outside and thus conduct more private place, of which exclusive property is conspicuous by blocking the exterior part whereas the interior part creates an intact fractal by embracing an infinite space. The gaze of a viewer inside becomes to concentrate on one's own figure which is repeatedly reflected as the viewer follows every angle of the reflections. Mirrors inside the hexagonal structure even reflect the parts which are hard to capture only with our physical ability. Viewers are employed as the components of the works and become objects to be seen. The elements such as the disconnection with the outside, the setup as a private place, and focusing on the viewers themselves, lead them toward an introspection like the illuminations on their being or self-respect which has been neglected due to familiarity. Multiple viewpoints and the space perception drop me so that I can sense depth and distance.

Oh Soonmi's work is an art object itself to be seen, and viewers are embodied to be viewed like art pieces. As viewers go deeper inside, they become to have active position of the subjects by the expansion of the range and meaning of the works because their sights change. The infinite spaces observed inside the works are virtual worlds which are visible but unreachable, of which the depth varies, where no one ever has visited. Thanks to the invitation to such a fractal, we can confirm that the human is a component in the universe and experience that the human is applied to the universal laws. In addi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has an analogy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eflected figures of the viewers themselves which are not exterior elements but become a watchable objects in the art work and the sense of the distance from the figures seen small far away in the circulation of repeating images. The past cannot be controlled from the past but the traces of the past affect the present, which is a time that reflects the past. The circulation of the human's life composed with cause and effect builds a principle of fractal of self-similarity, which enable us to know a fact that a small property of microcosm is found from the human. This seems to be a reason that, contrary to my expectation, the word 'cosmos' is entitled not to the Chaos Fractal that I first believed to have embodied the universe's form, but to the piece Cosmos Fractal in which I could concentrate more on myself.

Objectifying oneself might be contradictory and impossible to evaluate the same object that a subject ceaselessly intervenes. Nevertheless, I might say if we can see ourselves that are too close and familiar to look at, alleviate uncertainty or anxiety about the coming future, and find an association with it by understanding the present based on the past traces like fractal that appear on the human as a microcosm through Oh Soonmi's art.




우주의 법칙으로 이해한 소우주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 프랙탈이 발견된다고 한다. 폴록의 의도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우연성 강한 그의 기법의 결과에서 자연이 재현되고 있다. 캔버스 위의 프랙탈을 볼 수 있는 그의 작품과 비교해 오순미 작가의 <Cosmos Fractal>전의 작업들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 관객이 직접 프랙탈의 일부가 되어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프랙탈은 자연에 나타나는 법칙인데, 자연스러운 것과 인위적 의지덩어리인 인간은 대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오순미 작가의 <Cosmos Fractal>개인전에서 인간이 우주에 어떤 식으로 포섭되는지, 어떤 구성요소이며 한 개체와 프랙탈의 연관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전시장 한 쪽에 작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발이 찍힌 일련의 액자들이 모여 있다. 이 중 하나일 것 같은 발자국 모양이 같은 제목의 거울로 만들어진 <Traces>작품에 확대되어 들어가고 그 모양을 따라 앞의 발자국 주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발자국은 이동 후의 흔적이자 사람의 자취를 상징하는 것 같다. 또 족문足紋은 그 자체로 인간 신체의 외관에 나타나는 프랙탈의 예이기도 하다. 작품 내부의 연쇄적이고 무수한 반사 자체에서 보여주는 깊이감이나 대상의 반복 외에도, 프랙탈의 예인 족문을 따라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건 사람과의 관계나 인연이 반복과 순환임을 암시일 수도 있겠다. 설치된 거울 사이 공간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데, 이 틈은 거울에 비쳐질 대상의 교류, 순환이 일어나고 외부의 것을 받아들일 통로나 가능성의 역할 같기도 하다. <Chaos Fractal>과는 달리 직접적인 조명으로 연출하지 않기도 하고, 그 외의 빛이 거울에 상을 반사시키는 근원이 된다는 점에서 외부와의 소통이라는 속성이 내포된 것 같다.


<Chaos Fractal>

가변 설치가 가능한 이 작품 자체는 임시의 공간으로 볼 수도 있는데,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거울에 의해 내부에서는 무수한 반복의 공간이 보인다. 작품 각각의 옆면에 있는 주술적 문양 같기도 한, 프랙탈을 상징하는 기호 같은 두 기하학적 문양은 각진 모양과 곡선적인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속 공간이 연장되면서 교차하고 겹쳐져 각 면의 문양 중 한 쪽의 우월을 가리는 게 아니라 공존할 뿐이다. 앞, 뒤, 위, 아래로 공간은 영원히 연장되는데 그 속에 관객이 비춰지는 건 그가 작품 내부로 들어갔을 때뿐이고 그 상은 순간적이다. 마치 영원한 대우주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은 티끌 같이 덧없는 존재라는 것이나,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의 오고감에 따라 우주를 구성하는 것들의 순환과 닮아있기도 같다. 하지만 작품에 비춰지는 조명은 관객의 소리를 인식해 그에 따라 파장 정도가 달라지고 순간적 흔적을 분명히 반영한다.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전시 제목의 우주가 이 작품에서 나왔을 거라고 믿었다. 조명과 작품에 그려진 문양의 상징성, 프랙탈의 속성을 생각하면서 작품에서 보여주는 환상적 연출은 내가 생각하는 관념적인 우주와 맞닿아 있었다. 작품이 내포하는 무수한 공간은 이미 내가 실제로 속한 공간을 비춤은 물론 그 공간을 넘어 닿지 않는 가상의 공간도 비추고 있다. 하지만, 그 공간에는 나 자신이 포함되어 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가상이라는 것에 대한 경계의 괴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Cosmos Fractal>은 문이 닫히고 열리는 기능을 간직하면서 하나의 방과 같은 형상을 띤다. 더불어 안에서 거울역할을 하는 면은 밖에서는 시트지로 반전을 이루어 더 사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문 때문에 폐쇄적인 속성이 두드러지고 외부는 차단할 수 있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온전히 프랙탈이 펼쳐지고 역시 무한한 공간을 품는다. 작품 속에 들어온 관객은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반사되고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따라가면서, 그의 시선은, 비춰지고 반복되고 있는 자신의 형상에 집중하게 된다. 육각기둥의 거울은 인간 신체만의 능력으론 포착할 수 없는 부분까지 비춘다. 관객이 작품의 요소로 포섭되기도 하며 작품 내에서 볼거리가 되기도 한다. 외부와의 제한과 사적인 공간으로서의 연출, 관객 본인에게로의 초점은 존재에 대한 조명과 익숙해서 돌아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존중감 같은 성찰을 이끈다. 다각도의 시선과 공간감은 나를 떨어뜨려 멀고 가까움을 가늠하는 깊이감을 느낀다.


오순미 작가의 작품은 자체가 관람할 수 있는 조형물 대상이기도 하고, 관객이 하나의 조형물로 조망되고 포섭되기도 한다. 관객이 작품 내부에 들어갈수록, 각도에 따라 볼 수 있는 시야가 달라지고 작품의 범위와 의미가 확장되어 관객은 능동적 주체의 입장을 갖는다. 작품들 내부에서 보이는 무한한 공간들은 눈에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곳이고 깊이가 다양하고 가본 적 없는 가상의 세계들이다. 이런 프랙탈로의 초대로 인간이 우주 속의 구성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고, 우주의 법칙에 적용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작품 내에서 볼거리의 대상이 된 외적 요소가 아닌 관객 본인의 모습과, 그의 순환되는 상 중 멀리 비춰져 작게 보이는 상과의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은 과거와 현재라는 관계와 유사하다. 과거는 현재에서 통제할 수 없지만 과거의 흔적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는 어떻게든 과거를 반영한 시간이다. 이런 인과로 이루어지는 사람의 인생이 순환과 자기유사성의 프랙탈로 원리이고, 이로서 이미 인간에게 하나의 작은, 소우주의 속성이 발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내 예상과 달리, 우주를 형상화했다고 믿은 <Chaos Fractal>이 아니라 자신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Cosmos Fractal> 작품에 ‘cosmos'란 단어가 붙은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에는 끊임없이 주관이 개입하고, 하나의 주체가 같은 대상을 평가하는 모순되고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너무 가깝고 익숙해서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을 비추고 소우주인 인간에게 나타나는 프랙탈처럼 과거의 흔적에 근거하여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나 두려움을 줄이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연관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